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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3

아우내장터 3.1 만세운동 봉화제 ② 갈전면에서는 조인원을 중심으로 아우내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준비를 서둘렀고, 그러던 중, 인근 수신면과 성남면에서도 김상훈(金相勳)·홍일선(洪鎰善) 등의 20대 청년들이 밤마다 각 마을 근처의 산에 봉화를 올리며 만세를 부르는 것을 알고, 두 계통의 주동자가 만나 만세운동을 합동으로 전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4월 1일 하오 1시경, 조인원이 3,000여 명의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 헌병파견소로 시위행진하였습니다. 이때 일본헌병들이 기관총을 난사해, 유중권 등 많은 사상자가 났고, 시위군중은 일단 후퇴하였으나, 격분을 참지 못한 시위군중은 최초의 희생자를 둘러메고 헌병파견소로 몰려가 일제의 만행을 성토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취하려 하였고, 이.. 2024. 3. 13.
아우내장터 3.1 만세운동 봉화제 ① 천안시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중 대표적인 것은 1919년 4월 1일에 갈전면 아우내[並川]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입니다. 이 운동에는 이화학당(梨花學堂) 여학생 유관순(柳寬順)이 끼어 있어, 세칭 ‘유관순사건’으로도 불리는데, 용두리 지렁이골 유중권(柳重權)의 딸 유관순이 이화학당에 재학 중, 3월 5일의 남대문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독립선언서」를 몰래 가지고 내려왔고, 동네 어른인 조인원(趙仁元)·유중권과 숙부 유중무(柳重武) 등에게 보이고 서울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함으로써 이 만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갈전면에서는 조인원을 중심으로 아우내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준비를 서둘렀고, 그러던 중, 인근 수신면과 성남면에서도 김상훈(金相勳)·홍일선(洪鎰善) 등의 20대 청년들이.. 2024. 3. 13.
유관순 열사 생가를 다녀와서 이제 며칠있으면 3.1만세운동일인 3.1절입니다. 마침 천안에 다녀올 기회가 있어서 유관순 열사의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열사의 생가 정문 우측에 있는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시문을 읽어 가면서, 열사의 높고 높은 기개와 대한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 모습입니다. 단촐한 ‘ㄱ’자 한옥 초가집 형태로, 원래의 가옥은 거사 당시 일제에 의해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됐으며, 지금 볼 수 있는 집은 1991년 정부에 의해 새롭게 복원된 것입니다. 류관순 열사의 생가는 사적 제20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살던 작은 초가집도, 매봉교회도, 용두리마을도 모두 불에 탔으며, 그 후 일제탄압을 견디다 못한 매봉교회는 1922년 급기야 교회 문을 닫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래.. 201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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